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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산성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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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live (211.♡.197.122) 작성일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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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2 부산고구려$ 봉황역에서 수로왕릉역으로 가는 부산김해경전철입니다.00:00:16 여긴 김해입니다. 금관가야의 도시, 김해00:00:21 00:00:21 부산김해경전철을 타면 수로왕릉역과 박물관역 사이에 김해 대성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저 언덕이 대성동 고분군입니다.00:00:33 00:00:39 김해에는 대성동 고분군 말고도 봉황동유적, 수로왕릉, 분산성 등등 수많은 가야 문화유산이 있지만, 이번 영상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 7개소를 함께 둘러보는 목적이 있으니까 대성동 고분군과 박물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00:00:57 00:01:01 대성동 고분군 인근에서 촬영한 360도 드론 영상입니다. 김해시의 중심지에 위치한 구릉 위에 대성동 고분군이 형성되었고, 주변으로 구지봉과 김해 회현리 패총, 분산성, 그리고 금관가야의 궁성인 봉황토성 및 생활유적이 자리잡았습니다. 00:01:21 대성동 고분군으로 가까이 가는 드론입니다. 대성동 고분군이 있는 언덕의 옛 명칭이자 별칭인 애구지는 작은 구지봉 내지는 제2의 구지봉이라는 뜻입니다. 문헌기록에서 금관가야의 성지로 나타나는 구지봉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과거부터 이 언덕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곳으로 신성시되었고 그 전승이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지봉과는 약 600 m 떨어져 있습니다.00:01:56 대성동 고분군과 박물관 종합안내도00:02:01 앞에 보이는 대성동고분군은 1세기부터 5세기까지 철 생산과 국제교역을 통해 전기 가야연맹을 주도했던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입니다. 00:02:13 대성동 고분군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차례 발굴조사가 있었습니다. 확인된 무덤은 총 304기로 고인돌, 독무덤,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여러 시대 형식이 동시에 나왔다고 해요. 가야의 고분군치고는 초창기의 무덤이 아주 잘 보존된 경우입니다.00:02:37 1세기와 2세기에는 구릉지의 낮은 쪽에 목관과 목곽묘가 들어서다가 3세기부터 5세기 전반까지 대형 목곽묘가 구릉지의 정상부를 따라 조성됩니다.00:02:48 다소 독특한 것은 봉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전기 가야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지금의 애꼬지라고 불리는 능선에만 중첩되어서 왕릉급 무덤이 연속적으로 축조되었습니다. 능선의 중심으로는 왕릉급 대형묘들이 있고 그 주변으로 능선의 사면 옆으로 위계가 낮은 고분들이 분포합니다.00:03:09 주로 구덩식 덧널무덤같은 대형 무덤은 구릉 능선부의 좋은 자리에 위치한 반면 부산고구려$ 중소형 무덤들은 구릉의 사면과 주변 평지에 있어 지배계층의 묘역과 피지배계층의 묘역이 분리되어 있습니다.00:03:24 지배계층의 초대형 덧널무덤은 모두 순장이 확인되는데, 가야 지배층 고분에 널리 행해진 순장이 대성동고분군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고 합니다.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처럼 수십 명씩 묻은 대규모는 아니고 몇 명 같이 묻은 정도입니다.00:03:41 보통 도굴꾼은 값진 부장품을 노리므로 메인 덧널만 털고 가서 현대 발굴로는 오히려 순장자 덧널에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순장 유골들을 조사해 본 결과 평균 키는 남성 155.7cm, 여성 150.8cm였다고 합니다.00:04:00 대성동 고분박물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00:04:07 들어가자마자, 가야의 복식을 입어볼 수 있는 가상체험 시스템이 있습니다. 저도 한번 입어봤습니다.00:04:32 00:04:42 증강현실 체험 콘텐츠가 있다고 합니다. 안내데스크에서 태블릿 pc를 받아서 하는 거라고 합니다.00:04:47 대성동 고분군의 모형입니다. 고분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00:04:51 00:05:10 고분군이 위치한 김해만의 지리와 지형에 대해 설명합니다. 김해는 삼각주로 유명한 도시죠. '만'에 위치한 이점을 활용해서 중국과 왜를 이어주는 해상교역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유물이 그 증거지요. 00:05:26 무덤의 형태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립기의 널무덤, 성장기의 덧널무덤, 전성기엔 으뜸덧널과 딸린덧널, 쇠퇴기에는 구덩식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 순으로 확인된다고 합니다.00:05:41 00:05:50 고고학적 성과로 본 대성동고분군. 발굴조사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00:06:10 00:06:23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삼국유사 가락국기 기록의 ‘구지가’중에서 00:06:32 머리를 내놓는다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진 알에서 수로왕이 탄생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00:06:38 수로왕 이전, 대성동 고인돌. 즉, 김해지역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을 보여줍니다. 00:06:45 아홉 추장들이 통솔한 시대, 구간사회. 서기 42년 이전의 사회라고 합니다. 덧띠문토기와 검은간토기를 사용하던 시기라고 하네요.00:06:57 1820년에 그려진 김해부내지도 속의 고인돌의 위치. 수로왕릉 내의 치석과 서상동 부석이 현재까지 남았다고 합니다.00:07:07 김해지역에서 청동기시대에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겠습니다.00:07:22 1세기 최고지배자의 무덤, 가야의 부산고구려$ 숲 3호 널무덤.00:07:46 대성동고분군 널무덤의 특징. 요갱이 있기도 하지만 따로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토기, 철기, 칠기, 장신구등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2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00:08:12 대성동 대형덧널무덤의 특징. 전기 가야시기에 초대형 덧널무덤은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적이 없다고 하네요. 왕과 왕비 등 왕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4세기 이후 대부분의 대형덧널무덤에는 시상석과 꺽쇠가 있으며 모든 왕급무덤에는 순장자가 있었다고 합니다.00:08:37 4세기 5세기에는 고분의 깊이가 점점 깊어진다고 합니다.으뜸덧널에는 시신이 매장되고, 딸린 덧널에는 유물이 부장됩니다. 00:08:47 00:08:54 덧널무덤의 축조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00:09:25 홀로그램으로 토기, 청동거울 같은 유물을 3차원으로 보여줍니다.00:09:57 대성동 88호분의 모형입니다. 일본계 위세품인 바람개비 모양 청동기 13점이 출토되어 가야와 왜의 교류상황을 보여주는 고분입니다. 순장자 유골 3구가 나왔는데 노년 여성 1명, 젊은 남녀 각 1명으로 얼굴과 가슴에서 화살촉이 발견되었습니다. 형태상 모두 생매장이 아니라 죽은 뒤에 안치한 듯합니다.00:10:36 대성동 1호분입니다. 5세기 초 무덤으로 금관가야 전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초대형 덧널무덤입니다. 유물은 도굴 때문에 일부만 남았고 순장자 5구가 확인되었습니다. 가야에서 화폐로 쓰였던 덩이쇠를 가득 깔아놓았습니다. 대성동 고분군의 마지막 단계의 초대형덧널무덤이라고 합니다. 00:10:57 금관가야의 말갖춤을 보여줍니다. 금관가야는 철로 모방하거나 개량화해서 발전시킨 말갖춤새가 있어서 독자적인 문화를 보여준다고 합니다.00:11:18 금관가야의 토기문화. 대가야와 아라가야 토기의 원형이 되었다고 하네요.00:11:30 금관가야의 무사갑옷은 철판을 재단해서 만든 판갑과 작은 비늘모양의 쇠조각으로 구성된 비늘갑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갑옷과 투구에서는 북방문화와 밀접한 관련성이 보인다고 하네요. 00:11:46 이전에는 5세기 전엽에 금관가야가 멸망한 것으로 추정했었는데, 2011년에 대성동 73호분이 조사되면서 5세기 후반까지 금관가야가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00:12:08 대성동 73호분은 김해에서 조사된 구덩식돌덧널무덤 중에 가장 크다고 합니다. 북쪽에 부장갱이 있는데, 내부에서 금동화살통장식, 금귀걸이, 은제칼손잡이장식, 비늘갑옷, 재갈 등과 다량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시상석 부근은 모두 도굴되었는데도 부산고구려$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하네요. 00:12:31 대성동 고분군에도 돌방무덤이 있는데요. 이 무덤들은 금관가야 멸망 이후에 만들어진 상위 지배층을 무덤이라고 합니다. 모두 도굴되어 돌방과 널길의 하단석만 남았다고 하네요. 00:12:44 철로 유명했던 가야의 철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00:12:52 00:12:56 4세기의 세계. 서쪽부터 로마, 사산조페르시아, 쿠산왕조, 굽타왕조, 바카다카왕조, 유연 대 전진, 동진, 전연,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가야, 왜가 있네요. 다른 지역은 국가체제가 없었다고 봐야하는 걸까요? 이렇게 보니 참 여러 생각이 드는데요. ㅎㅎ 00:13:04 금관가야는 바닷길을 이용해서 다양한 국가들과 교류했었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00:13:12 목관묘에는 와질토기, 청동거울, 철기 등을, 2세기 후반에 나타나는 대형 목곽묘에는 중국의 청동거울, 일본의 바람개비모양동기 등 교역품을 부장하였습니다. 00:13:25 3세기 후반에 출현한 가야식 토기는 낙동강 하류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전기가야 분포권을 나타냅니다. 00:13:32 4세기 5세기 목곽묘에 부장된 철제무기와 교역품은 중국 가야 일본열도로 이어진 국제교역이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줍니다.00:13:47 00:13:52 예안리 고분군에 순장된 여인을 복원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방향을 바꾸면 인골과 복원된 모습이 번갈아 나타나는데, 다양한 전시에 활용할 수 있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창녕박물관에서도 순장된 ‘송현이’를 만났었던 기억이 나네요.00:14:07 어떤가요?00:14:41 00:14:44 금관가야는 5세기 중엽부터 해상교섭권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분열된 금관가야의 지배층이 고령, 합천, 함안으로 이동해 갔다고 하네요.00:15:00 대성동고분군의 순장. 지배계층의 초대형 덧널무덤은 모두 순장이 확인되는데, 가야 지배층 고분에 널리 행해진 순장이 대성동고분군 29호분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고 합니다.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처럼 수십 명씩 묻은 대규모는 아니고 몇 명 같이 묻은 정도입니다. 00:15:25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서, 대성동고분의 무덤 구조가 일본과 다르고, 당시의 링본보다 우수한 철기와 토기를 지니고 있으며, 총동솥, 동물모양허리띠고리, 굽은칼과 순장 등의 북방문화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허구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00:15:50 기마민족 가야정복설은 변형된 임나일본부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과 부산고구려$ 마찬가지로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합니다.00:16:06 신라고분문화의 원류. 금, 은, 금동을 이용해서 착장구와 마구류, 서역계 유리용기의 일괄을 부장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신라 고분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며,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00:16:26 하지만 이런 부장유형은 신라보다 대성동 고분군의 29호분에서 빠르게 나타납니다. 4세기에 김해의 금관가야가 신라보다 선진 문물을 일찍 입수했고, 금관가야가 쇠퇴하면서 경주로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입니다. 00:16:48 큰 박물관은 아니지만, 김해의 금관가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박물관이니, 대성동 고분군에 오시면 먼저 들려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고분군을 둘러볼께요.00:17:02 광개토대왕이 남정한 서기 400년으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초대형급 무덤과 별도의 딸린 덧널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규모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00:17:14 부장품도 전성기의 금동제장식마구와 왜계 위세품이 더이상 부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무렵부터 금관가야가 쇠퇴했다고 추정합니다. 00:17:26 박물관에서 보셨듯이, 부산대의 연구자들은 광개토대왕의 남정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쇠퇴한 게 아니라, 전성기가 조금 더 갔다고 주장한다고 하네요. 전 이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라서 누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의견들이 정리되겠죠?00:17:44 고분군에는 구릉을 두르는 크고 넓은 도랑이 발견되어 무덤과 함께 사람이 살았던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3세기 이전에는 구릉의 바깥을 도랑으로 두르고 내부에는 마을이 들어서고 외부에는 무덤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00:18:02 그러나 덧널무덤이 만들어지면서 구릉 전체가 무덤구역으로 변해 마을은 남으로 600 ∼ 700m 정도 떨어진 봉황대로 옮겨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00:18:12 대성동 고분군을 마지막으로 김해지역에는 큰 무덤이나 유적은 조영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큰 무덤은 강 건너인 부산 복천동이나 연산동에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00:18:23 하기사, 지금이야 김해와 부산이 나눠져 있지만, 바로 붙어 있는 동네니까요.00:18:29 이 영상의 내용은 박물관의 해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나무 위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00:18:40 00:19:05 대성동 고분군 7호분입니다. 5세기 전반에 조성된 주곽과 부곽이 따로 있는 부산고구려$ 덧널무덤입니다. 도굴이 많이 되었지만, 컵 모양의 토기, 각종 무기,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가 발굴되었습니다. 부곽에서 갑옷 총장 판갑이 출토되었는데, 복천동 고분군의 유물과 비슷하다고 하네요. 00:19:26 00:19:56 대성동 고분군 2호분.4세기 후반의 단곽식 초대형 덧널무덤입니다. 노형기대, 통형기대 등의 토기와 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과 투구, 원통 모양의 통형 동기, 옥 목걸이, 멧돼지 이빨로 만든 팔찌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10겹으로 쌓아 올린 덩이쇠는 절반이 도굴되었음에도 110점이 출토되었습니다. 금관가야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무덤 중 하나라고 하네요.00:20:26 대성동 고분군 1호분.5세기 초의 초대형 주부곽식 덧널무덤입니다. 주곽에는 무덤주인과 5명의 순장자가 매장되어 있었습니다.00:20:42 동쪽에서는 철제 무기가 출토되었습니다. 동북쪽 모서리에서는 도굴로 원래의 형태가 훼손되어 있으나 2열 5겹으로 쌓아 올린 덩이쇠가 출토되었습니다. 북서쪽 모서리 부건에서는 금동제 말 띠 꾸미개와 말안장 장식, 발걸이 등의 말 갖춤새가 발견되었습니다. 00:21:05 창 자루 끝부분에 붙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통 모양의 동기 8점은 청동 막대가 들어 있는 것도 있어서 맑은 소리를 내던 주술 도구의 역할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일본 긴키 지역에서도 출토되어서 당시 일본 수장과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00:21:22 부곽에서는 목과 허리를 보호하는 철제 갑옷과 투구가 출토되어 무덤의 주인이 지배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00:21:30 00:21:36 다시 7호분을 지나서00:21:45 93호분입니다. 5세기 초엽의 덧널무덤입니다. 주곽 한쪽 바닥에 장방형으로 부장 구덩이를 만든 독특한 구조라고 합니다. 관이 안치된 공간은 자갈돌을 깔았습니다. 00:21:58 부장용 구덩이에도 자갈을 깔고 순장자와 토기를 넣었습니다. 5명의 순장자는 무덤 주인과 나란히 누워 있으며, 관 외부에 3명, 부장 구덩이에 1명, 무덤 주인의 발치에 1명이 발견되었습니다. 00:22:13 으뜸 덧널에서 토기 말 갖춤새, 갑옷 등의 철기류가 발견되었고 금동제 말방울과 푸른 옥으로 만든 대롱옥이 출토되었습니다. 출토 유물로 보아 대형 왕릉급의 지배자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00:22:30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입니다.무덤구덩이를 부산고구려$ 2단으로 파고 그 구덩이에 돌널을 설치했습니다. 붉은 간토기 1점, 돌 화살촉 28점이 출토되었습니다. 충전석 사이에서는 붉은 간토기, 민무늬 토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주요 인물의 무덤이었을 것입니다.00:22:50 70호분입니다. 4세기 후반의 주부곽식 덧널무덤입니다. 고인돌 둘레에 쌓아 놓은 돌무지를 훼손하고 조성된 무덤으로 주곽과 부곽이 T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주곽과 부곽의 바닥 깊이가 1m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는 김해 지역의 주부곽식 덧널무덤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입니다. 주곽 외벽에는 갈대로 엮은 돗자리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처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00:23:19 주곽의 바닥 전체에 납작한 돌을 깔고 무덤 주인의 목관을 안치했습니다. 순장자의 것으로 보이는 유리옥과 철검 3점 등이 확인된 것으로 보면 최소 3명의 순장자를 매장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00:23:33 토기류, 철제 무기 및 농기구가 출토되었고 도굴로 인해 훼손된 상부에서는 금동제 말 갖춤새와 유리 용기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철제 판갑옷 및 투구와 함께 429점의 철 화살촉과 12점의 철 도끼가 출토되었고 가락바퀴, 일본 계통의 소형 그릇 받참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토기 아래에서는 상어 이빨 7개가 확인되었는데 머리도 함께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00:24:02 대부분의 유물이 도굴되었지만, 중국제 청동거울, 금동제 허리띠, 원통 모양의 청동기와 같은 위세품이 출토되어 왕릉급의 고분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00:24:14 88호분입니다. 4세기 중 후반의 초대형 덧널무덤입니다. 덧널 부분에 V자 모양의 홈을 파서 덧널을 고정했습니다. 바닥에는 납작한 돌 10장을 동서로 늘어놓아 6열의 시상을 마련하고 중앙부에 무덤의 주인을 안치하고 껴묻거리를 배치했습니다. 00:24:32 덧널에는 무덤 주인과 1명의 순장자가 확인되었습니다. 무덤구덩이와 덧널 사이를 채운 충전토 내에서 3명의 순장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충전토 내의 순장자는 노년의 여성, 어린 여성,장년의 남성으로 추정됩니다. 어린 나이의 여성과 장년층의 남성은 머리 뒤에 뼈로 만든 빗 모양의 장식품을 꽂고 있습니다. 00:24:54 유물은 많이 도굴되었지만 철 부산고구려$ 화살촉 207점, 뼈 화살촉 292점, 철 도끼 14점, 원통 모양의 청동기 3점, 구슬 목걸이 등 많은 위세품이 출토되어 왕릉급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00:25:09 용무늬가 조각된 금동제 허리띠 고리, 말굽 모양 고리와 화초 모양이 장식된 허리띠 드리개는 중국 서진에서 유행하던 최고급 위세품으로 서진-요녕-백제-금관가야-왜의 지배층 간의 교류를 보여준다고 합니다00:25:24 일본 계통의 유물로는 청동 창과 가락바퀴 모양의 석제품, 일본의 지배층 무덤에서만 나오던 청동 화살촉 4점과 바람개비 모양의 청동기 13점이 출토되었습니다00:25:36 이들은 금관가야와 그 당시 일본 왕권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입니다00:25:42 91호분입니다. 4세기 초의 초대형 덧널무덤입니다. 5명의 순장자는 모두 남쪽에 머리를 두었습니다. 도굴이 심했지만, 금동 삿갓 방울, 용무늬 말안장 장식, 사슴뿔 장식 등의 위세품, 화로형 그릇 받침 등의 토기류, 각종 철기 및 말 갖춤새, 로만 글라스 조각, 중국 동북 지방 삼연 계통의 금동제 말 갖춤새와 청동 그릇, 일본 오키나와 아열대에 서식하는 조개를 사용한 말안장 장식도 발굴된 고분입니다.00:26:14 00:26:43 가람 아파트의 왼편으로 분산성이 보이네요. 저기도 가보시기를 추천합니다.00:26:55 00:26:56 야외전시관입니다. 29호분과 39호분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 전시하고 있습니다. 29호분은 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왕묘로 추정되는 무덤이며 청동솥, 도질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00:27:13 39호분은 4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29호분을 일부 파괴하고 축조되었습니다.이런 무덤간의 중복 축조는 금관가야 무덤 축조 방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금관 가야 지배계층의 세력 교체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00:27:31 00:28:44 대성동 고분군 주변은 많은 시민들이 찾으실 수 있도록 공원화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설도 있었는데, 건강이 별로인지 발바닥이 엄청 아프더라구요.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여러분 모두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00:29:57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박물관은 여기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근처에 국립김해박물관이 있는데요. 여긴 가야 전문 국립박물관이라 안보고 가면 서운합니다. 그래서 다음 영상에서 같이 가보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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